7화. 분위기 – 춤추며 탐구한 문장들
단계적 일상 회복, 일명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행되자 사회적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코로나19 확진 소식은 더욱 빈번해졌지만, 심리적 경계와 긴장은 도리어 누그러졌다. 단단하게 꽉 엉켜 있던 마음속 매듭이 슬그머니 느슨해진다.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이 차츰차츰 모여든다.
몇 주 전, 만딩고 춤 워크숍에는 1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이었다. 이만큼의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 춤을 춘 것도, 스튜디오가 삽시간에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도. 분명 지난날과 동일한 안무를 익히고 비슷한 순서로 진행되는데도, 공간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분위기(雰圍氣). 눈 날릴 분(雰), 에워쌀 위(圍), 기운 기(氣). 눈 날릴 분(雰)자에는 눈 말고도 안개, 서리, 먼지, 기운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거칠게 직역하자면 ‘기운으로 에워싸인 기운’ 정도 되려나. 뜻을 풀어쓰고 보니 더 어렵다. 그만큼 ‘분위기’라는 단어는 상대적이고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누구든 또렷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위기를 느낀다. 한 자리의 다수가 감지한 분위기는 어떤 결과를 도모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상학 사전>이라는 책에 따르면 우리를 둘러싼 분위기는 ‘우리의 기분과 서로 월경하는 교착된 관계’에 있으며,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정의내린다. 춤추는 날의 분위기가 어떤지에 따라 흡수하는 에너지의 종류도 달라진다. 춤추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함께하는 이들이 춤의 집중도와 합을 맞춰줬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날도 있다.
위에 언급한 같은 책에서 현상학을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한 명인 헤르만 슈미츠(Hermann Schmitz)는 감정을 일컬어 ‘신체의 동요에 의해 감지되는 분위기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혼자 추는 춤은 어떨까? 신체의 동요를 생산하는 것도 나요, 그것을 감지하는 것도 나뿐이다. 신체적 동요를 고됨으로만 감지하고 시시하게 마칠 수도 있다. 여럿이 추는 춤은 고된 일인지 모른다. 아니다, 신체적 동요를 고됨으로만 감지하는데 혼자 출 때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함께라서 오래 춤춘다. 붕붕 뜨는 기운은 땅으로 잡아당긴다. 무거운 기운은 한껏 공중으로 밀어낸다. 서로를 붙잡고 풀어주며 묶여 있던 마음을 헤집는다. 헤집은 자리에 고여 있던 맑은 물로 세수한다. 어푸어푸 닦아내는 동안 고됨도 씻겨 내려간다. 타인의 웅덩이에 비친 물의 색감과 흔들리는 빛깔을 포착한다.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모른 체 한다. 영롱하고 아름다워 내 안으로 끌어당기기도 한다. 내가 그러는 동안 타인도 그리한다. 그 사이 분위기가 변한다. 일순간에 훅하고 달라진다. 노을빛에 저무는 하늘처럼 서서히, 그러나 강렬하게 타오르기도 한다. 함께 통과하는 분위기 속 우리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걸 춤으로, 몸으로 만끽한 것이다.
글 | 보코